스퀴즈 비기닝 ; 잡지의 시작 스포오츠~

<친구가 발행한 삼성 라이온즈 전문 잡지 '스퀴즈' 기고문>

시작은 항상 설렌다. 그러나 늘 시작은 별 볼 일 없고 싱거우며 금세 잊힌다. 야구선수에게도 시작은 그럴 것이다.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던 ‘양준혁’ 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기억하기도 싫을 만큼 초라한 발자취를 프로라는 땅 위에 새겨놓는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쉽게 뒤로 밀려나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 잊힘이란 대중들의 감각이다. 선수 자신은 그 시작을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처음 꿈의 무대로 걸어나가던 어린선수가 했을 다짐과 가졌던 떨림은 기나긴 야구 인생을 앞둔 그에겐 강렬한 단상을 남겼을 것이다.

본지의 편집장이자 친구인 녀석에게 잡지의 한 꼭지를 부탁받았을 때 무엇을 쓸까 적잖이 고민했다. 수치화된 기록과 정확한 규정이 중요시 되는 야구. 그 장르를 다루는 매체의 글은 필연적으로 딱딱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의 공간은 소재의 자유도가 높고 표현의 관용도가 넓다. ‘뭐든지 쓸 수 있다’는 반대로 ‘뭐라도 써야 한다’는 피로감을 동반하고, 결국 무수한 소재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익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20년 ‘삼팬’이다. 소재의 곳간이 풍부하다는 것은 선택의 피로감은 있겠으나 글 쓰는 요령에 따라 좋은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 필자가 쓰게 될 챕터는 야구를 둘러싼, ‘라이온즈’를 둘러싼 ‘나’의 사소한 에피소드가 주를 이룰 것이다. 화려한 조명 속 수많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어느덧 어른이 된 사람의 이야기 말이다. 스타들의 스토리도 차고 넘치는데, 한낮 ‘삼팬’ 청년의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영화를 쓰고 찍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영화만큼 야구를 즐겨보고 사랑한다. 그러다 보면 야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삶 일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을 사귈 때도 이야기는 기승전..... 야구로 흐르고 그 사람이 응원하는 팀을 그의 성격과 결함을 나타내는 척도로 삼기도 한다. 야구시즌 중에 나의 하루는 20시간 (야구 보는 4시간은 빼고) 뿐이며, 응원하는 팀의 성적에 따라 그 기간의 컨디션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런 정도니 인생의 크고 작았던 사건들이 야구와 연관이 되어있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그 안엔 우정도 있고 배신도 있으며 청춘의 열정도 있고 사랑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응원하던 라이온즈의 강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대게는 패배와 좌절로 끝나는 쓰라린 추억들뿐이다. 그렇게 라이온즈를 사랑하던 팬은 추억의 더미를 쌓아올리며 어느덧 서른이 되었다. 흔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그렇다. 내 실패와 좌절의 추억들. 그리고 약간의 희열과 행복들. 내 인생의 파편들도 야구와 연동하고 맞닿아있다. 그리고 야구를 사랑하는 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야구를 사랑하고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할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기도 하다.

하여 여러 가지 추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처음 아버지랑 야구장을 갔던 기억. 처음 야구 글러브와 배트를 사고 친구와 야구를 하던 기억. 라이온즈 첫 우승의 기억. 등등. 그런데 야구를 둘러싸고 떠오르는 추억과 기억의 장면들은 대부분 ‘시작’과 관련 된 것 들이었다. 잡지의 창간호이기도 하니 ‘시작’을 주제로 글을 써야겠단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 문득 야구를 통해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녀석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이 ‘시작’이라 것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아니겠느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와의 만남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가 친해진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같은 학교 같은 학원. 10대 남짓 꼬맹이들이 친구를 폭넓게 취사선택하긴 힘들다. 어린 꼬마들에게도 학연과 지연은 절대적 규범이다. 그러나 우린 거기에 약간의 반항을 하기로 한다. 우린 취향의 공유를 통해 친해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90년대 당시는 이른바 문화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80년대 성장 위주의 경제 개발의 과실을 한창 수확하던 시기이다. 경제력인 생긴 대중들은 자연적으로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이는 대중문화의 도약을 부채질했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새로운 영화와 음악들은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나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꼬맹이치고는 조숙했던 그 친구와 나는 좋아하던 음악을 공유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특히 우리는 락 음악을 좋아했는데, 당시 좋아하던 밴드에 경도되어 함께 공연장을 가기도 했었다. 락 음악이 당시에는 분명 주류문화 중 하나였으나 중학생들에겐 아직 생소한 그 무엇이었다. 아이돌 음악 따위(?)나 듣는 꼬마들 사이에서 꽤 대단한 걸 듣고 있단 착각과 우리만 그걸 알고 있다는 우월감은 그 친구와 나를 더 똘똘 뭉치게 하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우린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에서 만큼은 이견이 있었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의 위상은 오늘날 같지는 않았다. 절대 팬 수나 야구 선수들의 능력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이미지의 문제였는데 프로야구 하면 왠지 팩소주와 담배, 그리고 넥타이로 상징되는 아저씨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어려서부터 소시지보단 돼지 귀때기를 좋아하던 필자의 늙수그레한 취향(?)의 영향인지 나는 줄곧 야구와 라이온즈뿐이었다. 그러나 당시 십대들의 스포츠 취향에 영향을 줬던 건 ‘피파’와 ‘위닝 일레븐’ 시리즈로 대변되는 해외축구의 붐이었다. 녀석은 당시 ‘싸커OO' 이라는 웹진에 글을 기고할 만큼 해외축구에는 정통해 있었다. 다행인건 녀석도 ‘이승엽’ ‘양준혁’ 같은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라이온즈의 명성 덕분에 어느 정도 관심은 갖고 있었단 것이다. 그러던 그 녀석은 어느 순간 축구보다 야구를 더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기억이란 왜곡되고 유리하게 저장되니 아마 녀석과 나의 기억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수치화된 데이터 분석에 뛰어나고 역사와 전통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 야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걸 유리한대로 ‘내 덕분에 야구에 관심 가진 녀석’ 이라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아마 진실은 녀석이 야구를 좋아했던 내게 ‘맞춰 줬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만나면 늘 야구 이야기를 했다. 팀 전력을 따져보고 야구 선수의 경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그렇게 우린 단짝이 되었고 먼저 야구에 정통했다는 것이 무색하게 난 야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늘 녀석의 의견을 물었다. 녀석의 눈은 늘 날카롭고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녀석은 좋아하던 야구를 공부하고 쓰며 늘 그 곁에 머무르더니 어느덧 잡지를 창간한다며 소식을 보내왔다.

시작은 항상 설렌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의 고단함을 아는 입장에서 친구의 시작을 알리는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그러나 녀석도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는 신인 선수의 심정으로 떨리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앞서 ‘시작’은 쉽게 잊힌다고 했다. 그러나 ‘기록’은 영원하다. 야구선수의 시작도 잡지의 시작도 기록에 의해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는다. 잊혀도 사라지진 않는다. 대 선수가 된 영웅이 자신의 옛 모습을 보며 추억에 빠지듯 세월이 지나 서랍 안에서 우연히 찾아낸 ‘스퀴즈’ 창간호를 보며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를까? 창간호에 벌써 ‘추억’ 운운하는 건 쓸데없는 오지랖 같지만 궁금한 건 사실이다. 아마 즐거운 추억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설레는 첫발을 내딛는 친구의 ‘시작’을 열렬히 응원한다.


덧글

  • 2014/04/29 23:2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개짖는소리 2014/04/30 01:24 #

    나이도 같고 친구의 친구라고 하니 정후니 친구분이신가??
    저는 박충식 김상엽 같은 추억의 스타들도 그립지만
    생뚱맞게 최창양이 떠오르네요.
    터질듯 참 안 터졌던 유망주. 뭐하고 살려나.
  • 2014/04/30 10:3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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