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그리 빡쳤을까?? - 아르고 영화, 나부랭이

대딩 시절 세계 영화사 시간. 그 날의 주제는 50년대 일본영화였고 그 시대의 3대 거장으로 불리우는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해 공부했다. (참고로, 나는 이마무라 쇼헤이를 좋아한다.) 러시아에서 영화이론과 영화사를 공부했지만 정작 영화 한편 찍어 본 적 없다는 이력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던, 사실 지루하고 고루한 수업방식과 융통성 없어뵈는 꼬장한 성격 때문에 아이들이 싫어하던, 교수는 이 시기의 영화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했다. 미학적인 성취와 영화적 완성도는 차치하고 패망한 일본, 침략국 일본에 대한 자기반성이 영화 속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의 일본 영화들은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쯤 되려나? 혹은 이상한 망상이나 환상에 젖어 어디 안드로메다로 도피하는 영화를 제작한다 쯤?

당시 교수의 말에 대한 내 생각은 이랬다. 그렇담 일본영화는 감독과 배우 그리고 일개 스텝까지 모두나와 석고대죄 하고 나서 영화를 시작해야 하나? 아님 일본 영화 속 인물들은 반드시 침략 당한 국가들에 대한 반성의 포즈로 새끼손가락이 하나씩 절단 되어 있어야 하나? 영화 자체가 프로파간다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자유로이 영화를 만들 권리 조차 없나? 단순히 침략국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찍을 때 강박적으로 죄의식을 영화 속에 투영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당시 피어올랐던 내 의문은 다시 의문의 꼬리를 문다. 정치적 선전을 위한 영화라면 의도가 빤하지만 감독 본인은 '옳다' 고 믿는 '선의'를 갖고 찍은 영화가 타인에겐 불쾌한 기억을 호출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감독이 순수하게 비정치적이라고 생각하며 투영한 세계관이 타인에겐 어떤 의도로 읽힌다면? 가해와 피해를 뚜렷하게 판단 될 수 있는 침략전쟁을 겪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의 영화에 대한 잣대가 엄격해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구분이 모호한,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케 하는 사회적 맥락이 거미줄 처럼 성긴 문제들에 대해서도 한가하게 반성 운운할 수 있을까? 결국 영화는 의도를 배제하고 찍었으나 표면 아래에선 모종의 의도가 도드라질 수 있고, 최대한 균형을 맞추어 핵심을 접근하고자 노력해도 누군가는 편향된 생각이라 질타할 수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아르고는 분명 잘 만든 영화다. 구금 당한 인질들을 구출하는 타임 리미티드, 스릴러로써 긴장감으로 관객을 죄어오며 불안하지만 몰입하게 만드는 연출이 돋보인다. 특히 관객의 호흡을 뺏고 이완시키는 리듬감 있는 편집과 카메라 그리고 인물들의 세밀한 심리 묘사는 영화의 완성도를 더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모종의 불편함을 느꼈다. 연출자 밴애플렉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선의를 갖고 영화를 제작했을 것이다. 적국에 조난 당한 병사는 기필코 귀환시킨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대의 말이다. 마치 악인에게서 선인을 구해오는 이런 구출의 이미지. 화려한 테크닉으로 관객의 감정의 끈을 팽팽히 당겨 놓았으니, 관객들은 종례에 가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무사귀환 하기를 반드시 바랄 것이다. 그것이 마치 해피엔딩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난 오히려 미국인들이 잡히기를 바라기도 했다. 프로레슬링을 볼 때, 혹은 후레쉬맨 따위의 영웅물을 볼 때 악인을 응원하곤 하는 못된 심보가 내재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었으니, 그래도 살아라 응원해야지!!

기막힌 영화적 재미들을 뒤로하고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성난 이란 시민들 특히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차도르를 쓰고 시간이 되면 알라에게 기도 드리는 술탄의 딸들은 무엇에 빡쳐 총을 들었을까?

세계 깡패 미국은 석유 회사를 국유화시켜 이란의 국민들에게 나눠준 민주 지도자를 실각하고자 이란 군부에 돈을 대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미국의 허수아비 왕은 부와 권력을 즐기고 이란의 시민들은 새로운 권력이 휘두르는 공포정치에 무고한 생명을 잃는다. 대부분이 시아파인 이란의 시민들은 허수아비 왕이 추진하는 서구화 정책에 반감을 가진다. 결국 혁명이 일어나고 종교 지도자가 국가의 새로운 원수가 된다. 쫒겨난 독재자는 미국의 망명 신청을 하고 미국은 이를 받아 들인다. 이에 이란 시민들은 독재자의 반환을 요구한다. 그들의 손으로 직접 독재자를 심판하겠다고 벼루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묵묵부답. 결국 빡칠대로 빡친 이란 시민들은 미국 대사관을 덮친다. 그들이 보기엔 대사관 직원들은 미국 스파이에 다름 아니다. 미국 정부는 이 일을 통해 인기몰이를 하는 케네디에게 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미국은 정치적인 계산과 대외관계의 처세까지 신경써야하는 판이다. 영화는 물론 역사적 맥락을 묘사하긴 하지만 기계적이다. 이란 시민들이 분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보다는 미국인들을 구한다는 작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강력한 반미 감정으로 무고한 시민에게까지 테러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불특정 다수를 향하는 테러리즘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 테러의 원인을 시아파들의 악행으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뒤엉켜 있다.

세계 영화사 교수의 말을 인용하자면, 영화 아르고에선 미국이 중동 석유 이권을 위해 CIA를 투입하고 공작을 했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반성이나 죄책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가치판단은 유보한체 역사적 사실을 기계적으로 조금 다룰 뿐이다. 앞서 내 의문이 그렇 듯 잘 빠진 장르 영화에 굳이 반성이니 죄의식이니 하는 것을 가져와야 하는지 헷갈린다. 그렇게 팍팍하게 볼 만큼 이 영화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베트남을 종횡무진하며 총질하는 람보는 그냥 즐기면 된다. 거기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게 더 병신스럽다. 그러나 영화를 내내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카데미는 남북전쟁, 프랑스 대혁명, 서부 개척 시대, 빈라덴 암살, 등을 제치고 미국인 구출하기 미션에 손을 들어 주었다. 아르고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스스로의 결핍을 채우듯이 말이다. 결론은 공부다. 묵혀두었던 세계사 서적이나 미국 까는 책들 좀 다시 봐야겠다. 나부터 편향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덧글

  • 에이브군 2013/03/13 08:00 # 답글

    일단 심지어 그 종교지도자 조차 혁명초기에는 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소리도 있는 사람이니까요. 샤도 작중에서 말하듯 lunatic인데다가 얼간이는 맞지만 호메이니쪽도 그리 좋은 쪽은 아니었습니다. 혁명초기이란내 분위기는 공포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고 최근 영국국적 뉴스위크 기지가 잡혔다가 석방된뒤 수감기를 이야기한적 있는데 보시면 대략 감은 잡으실겁니다.
  • 개짖는소리 2013/03/14 19:26 #

    네.... 잘 모르는 역사적 사실을 갖고 글을 쓰는건 지양해야되는데 공부가 부족했네요. 중동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책을 좀 살펴봐야겠단 생각이듭니다. 리플 감사합니다.
  • 2013/03/13 08: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14 19: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엑스트라 1 2013/03/13 09:44 # 답글

    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른 편향으로 빠져드시려고 하는군요.

    미국이 파트너로 선택한 팔레비가 분명 반민주적인 독재자에 비밀경찰 수괴였지만, 서구화되지 않은 이란 국민이 선택한 이슬람식 민주화가 샤리아와 혁명수비대가 날뛰는 지금의 이란을 낳은 것도 사실이죠.
  • 개짖는소리 2013/03/14 19:27 #

    조금 아는 것이 아에 무지한 것 보다 위험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균형감을 찾으려면 그것을 둘러싼 총체적인 차원에서의 공부가 먼저겠죠!!? 리플 감사합니다. 이슬람 문화와 역사에 관한 내용이 잘 정리된 좋은 서적 있으면 좀 추천해주세요..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 2013/03/13 09:59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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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3/14 19: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13 11: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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