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시작. 가끔 독서

불행은 의심하는 자의 것. 행복에 대해 강박하는 자의 것이다. 행복이라는 녀석이 물이 올라 셀죽 웃음을 건네면 의심하는 자는 그 미소 이면의 허무를 읽는다. 가장 행복한 순간, 이 감각이 사라지고 난 뒤 남을 상실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이 행복이 떠나고 나면 정말 외로울테지 하고 서늘하게 느낀다. 
 
행복의 절정에서 울컥울컥 불안감이 솟구친다. 이런 사람들은 진정 행복함을 느끼지 못한다. '진정' 행복함이란 행복할 때 모든걸 다해서 그 느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해야할 때 불안해한다. 결국 현재를 살지 못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끌어와 현재를 살고 과거의 축복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한다. 현재에는 실체없음. 유령의 발걸음. 미래와 과거 사이의 존재.

이런 이들의 유일한 재능은 상상력인데, 그 재능의 최대치는 항상 최악의 순간을 상정해 놓고 괴로워 하는 것에 이용된다. 그들은 행복이란 정상에서 아래를 보며 여유와 미소의 메아리를 울리기는 커녕, 미끄덩 놓인 밧줄 하나 몸에 걸어 놓는다. 아래를 바라 보며 언제든 안전하게 낙하할 수 있게. 즐거움에서 슬픔의 조각을 발견하고 우울해하는 지독한 겁쟁이. 슬픔은 오래된 친구처럼, 늘 곁에 나란히 걷고 있다.

술처럼 달콤한 행복에 취해 달큰 잠이 들고,
꿈결 아득 어여쁜 여인의 목소리 속삭일 때 
늘 나를 지켜보던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소리없이 흔들어 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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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나를 깨운다.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준다.
슬픔의 나직하고 쉰 목소리에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슬픔은 가볍게 한숨지으며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모르겠어.....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은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외출을 할 떄도 따라나서는 슬픔이
어느 곁엔가 눈에 띄지 않기도 하지만
내 방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돌아갈 때
나는 그곳에서 슬픔이
방 안 가득히 웅크리고 곱다랗게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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