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하지 못하고 비겁했던 할말없음

 단순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한다. 소설을 읽다 가끔 장식적인 문장과 마주하거나, 교양서적인 척하는 논문 수준의 훈장질 문장과 마주 할 땐 나름의 방법으로 그 문장을 간단하게 풀이한다. 그러나 논리와 개념으로 철옹성을 두른 깐깐한 문장 앞에선 당혹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놈은 물 한방울이 흐르고 흐르면 갑절의 바위를 뚫듯 끊임없이 문장을 읽고 또 읽어 스스로 해석 되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잘못 풀이된 것이거나 저자의 원뜻에 어긋나더라도 말이다. 그래야 다음의 맥락으로 헤엄칠 수 있고, 의심이 뒤따르지 않는다. 그렇게 한권의 책을 온전히 잘못 읽은 것도 있으리라. 그러나 저자로부터 쓰여진 책이 독자인 나에게로 온 순간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독해할 권리는 내게 있는 것이다.  

가타부타, 내디던 발을 한번만 더 크게 들어 앞에 놓으면 새로운 세대가 된다. 다사다난, 공사다망 했던 청춘 조승범. ' 그때'라는 추억의 공간에 달게 될 현판엔 어떤 단어가 씌여질까? 나는 그곳에 '열패감, 열등감'이란 단어를 열심히 쓰고 있다. 이랬던 기억도 저랬던 추억도 돌이켜 요약해보면 열등해서 그랬던 것이라 생각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나'라는 문장은 종례엔 '열등감' 이란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석하고 독해했다.

그러나 난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상황에 '열등' 했던 것이 아니다. '비겁' 했었다. 스스로 열등하다는 생각을 무슨 방패처럼 들고 다녔다. 난 열등해서 안 될거야. 그리고 그 끝에 따라오는 열패감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새겼다. 자기연민은 삐뚤어진 자기애이다. 스스로를 공격해 스스로 상처 받고 완전 변태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쉬워진다. 난 어차피 열등해서 안 된다고 생각해버리면 되니까 말이다. 도망갈 구석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나 편한가? 스스로 그어놓은 경계에 따라 일의 비중을 판단하고 으레 발을 빼버리면 되니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더니, 구더기만도 못한 알량한 자존심. 상처받기 싫어 그렇게 장독대 안 한켠 꽈리를 튼 나만의 구더기를 키우고 있었다. 나하나 상처 덜 받자는 참 알량한 생각. 감정에 휘들리기 싫어 이성적인척 호기 부리던 어줍잖은 어른 흉내. 솔직해 지지 못한다는 건 결국 관계에 서툴다는 것이다. 필경 외룸움이 꼬리처럼 달라붙는다. 살랑살랑 거리다 이내 부풀어 오른다. 행복은 고통의 함량에 비례한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그런 점에서 필경 나는 비겁하다. 비겁함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내 나를 그 속성 속에 가두어 개념화 하려는 시도조차 비겁하다. 자신을 미화해 고민 한움큼 내려놓으려는 얕은 시도조차 비겁하다. 비겁해서 비겁하다.
 
9개월간 교육 프로그램을 끝내는 술자리. 다른 교육생들은 연극도 올리고 장편 시나리오도 버젓히 썼단다. 단편 영화를 찍은 친구도 있고, 멘토네 회사에 취직한 아이도 있다. 나는? 나는 알량한 자존심. 구더기가 똥 위에 알까듯 움크리고 앉아 젠체하는 말투로 자기혐오 비슷한 걸 토해내고 있었다. 비겁해지기 싫어 열등감으로 나를 위장하고 위선을 떨며 냉소를 내뿜는 건 왠지 멋져보이니까 말이다. 좀 먹힌다. 40대 초반 남짓 여자 PD가 내 옆에 앉았다. 좀 유명한 피디다. 내 교육 프로그램 플랫폼 기간의 부대표. 어린 나이에 좀 잘 나가는 사람. 이다. 먼젓번 중년의 남자 피디와의 대화에선 왠지 나이 어린 나를 깔보는 듯한 말투로 쪼개길레 몽니 부리며 허세를 늘어 놓았는데, 여자 피디는 말이 잘 통한다. 아무렇게나 뻗은 머리. 미용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거칠고 굵은 뿔테 안경. 거울은 안 보면 그만이라는 듯 꺼칠한 피부와 손매무세. 늘 그렇듯 어두은 패딩에 등산 양말. 소위 업계에서 잘나가는 제작자 피디의 외관이다. 내가 꿈꾸는 세계의 성공의 외피는 그런 모양인가? 시각에서 압도당한다. 그리고 어리숙하고 자기고백적 말투에선 그 '업계'의 피곤함이 묻어난다. 청각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그렇게도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숨기 위해 꼴랑 겉모습으로 시비를 건다. 저 사람이 이루어논 세계를 폄훼하고 싶어진다. 성공해봐야 저렇다!! 고.

술자리는 열등감이 위선으로 위선이 어줍잖은 호기로 허세로 발전되며 내 정신도 전발되고 있었다. 말 편하게 해도 된다는 포장된 가식에도 끝끝내 나를 높이던 피디님은 '저도 그 나이 땐 계속 이 일을 할까 말까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계속 참고 일을 하고 나니 얻는게 있더라구요'.. 이런 식의 대화엔 못된 심보가 발동한다. 경험을 우위로 꼰대처럼 말하지 마라. 나의 상황과 너의 상황을 어줍잖게 동일시 하지마라. 엄연히 처한 환경이 다르다. 대게 이런 비뚤어진 마음은 그 세계에 편승하지 못한 아니 못할 것 같은 나의 열등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 오해했다. 뭐라 항변하기 힘든 압도적인 어른 앞에선 그 세례의 빗줄기가 무서워 불쌍한 내가 스스로에게 우산을 펴주는구나. 라고.

그런데.. 그런데... 여자라는 생리적 40대라는 물리적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투박한 안경 속. 과장된 안경렌즈를 통해 세상의 맨 모습을 실체를 바투 보려는 의지를 되새기는 듯. 그녀의 눈은 서투른 반론에 달뜬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에 그 안경 안에 맺힌 내 모습은 어쩐지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웠으며 비겁해 보였다. 안경을 통해 내 속마음이 투사되는 듯 보였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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