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왜 하니? 할말없음..

나는 어렸을 적 부터 거짓말을 잘 했다. 미취학아동일 때 부터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를 속일 요량으로 해대는 거짓말 쯤이야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얼마나 빤하겠나? 금방 들키고 맴매 맞고 그랬다. 그러나 어느정도 대가리가 굵어지고 난 뒤 거짓말은 왠만해선 들통나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도 거짓말을 하는 나를 두고 엄마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내가 모질지 못하고 소심한 부분이 있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해, 잘못했던 허울을 숨겨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남을 속인다고. 이건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진실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남을 속이면 어려운 것도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남을 속이는 것은 단순하고 편리하다. 내 거짓말은 대부분 당장 앞의 일들을 대충 무마하고 넘어가려 하는 거짓말이 대부분이었다. 이건 단순히 1을 2라고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고, 애시당초 숫자가 없었는데 있다고 남을 속인다. 때문에, 거짓말이 들켰을 경우 잘못을 바로잡는 것으로 일이 해결되진 않는다. 남들은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기에 그것들의 실체가 발각되고 나면 나에게 실망하고 섭섭해하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태는 심각해진다.
 
이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때 학교 앞 산 정도로 야영을 가는 것이 매년 학교의 행사였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고딩들이 고가의 등산용 패딩을 막 입고 다닐 정도로 다들 부유하진 않았기 때문에 나뉜 조원들이 각자 맡은 물품을 가지고 와야했었다. 대충 쌀, 냄비, 휴대용 가스레인지 따위다. 그 중 가장 골치 아픈 것은 텐트인데 텐트 자체도 희귀하고 고가일 뿐더러 막상 집에 있는 녀석들도 휴대의 불편함 때문에 감히 텐트를 가지고 오려곤 하지 않았다. 그럴 때 내가 나선다. 집에 있건 없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남에게 이목을 받고 싶어서 무턱대고 내가 텐트를 가지고 오겠다고 선언해버린다. 순간의 영웅행세에 도취되어 나서고 자랑하고 그런다. 그러면 집에서는 난리가 나다. 이미 뱉어논 말이니 담지도 못하고 아버지는 아들 기죽지 말라고 텐트하나 어디서 구했는지 턱하고 내민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내 그 고까운 선의인지 위선인지에 별 말 않고 넘어가셨는데 악역은 항상 어머니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남에게 잘보일려고 있지도 않는 텐트를 가져가겠다고 하느냐? 그런 거짓말이 더 나쁜거다!! 라며 나를 나무라셨다. 어머니는 요즘도 나의 뻔한 공치사 (이번 달에는 꼭 내려 갈께요. 자주 전화드릴께요) 가 지켜지지 않으면 득달같이 화를 낸다. 아마도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어코 믿어보다 이내 실망하고 섭섭해하시는거다.

물론 순기능도 있다. 내 거짓말이 나를 꾸미기 위해 작동하는 것이라면 그 것의 발각이 두려워 뭔가 이루어내는 경우이다. 내 의지를 달성하기 위해 그 것을 공론화시키고 구라를 치는 것이다. 고1때는 친구한테 지기 싫어서 나도 반장선거에 나간다고 구라를 쳤고, 남앞에 나서기를 죽기 보다 싫어하던 사춘기 시절 당당히 반장이 되었다. 내뱉고 나서 나서지 않았다면 내 스스로에게 더 실망으 했을테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일단 선거에는 나갔는데 운이 좋았던 거다. 이런 경우들이 내 인생에 비일비재하다. 대학교 1학년때 허언을 날려버려 영화를 찍었던 경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이유도 비슷한 경우고. 이렇다 보니 이제는 아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 이루고 싶은 목표를 상정해놓고 친구들 앞에 구라를 치기도 한다. 이건 허세에 가깝다. 못 이루면 내가 쪽팔리니까 노력이라도 하겠지라는 생각.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거짓말쟁이가 되어간다. 내뱉었던 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진다.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다. 어느새 나는 허세, 허언을 늘어놓는 입만 가벼운 인간이 되어버린다.

거짓말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은 좋은 기억력이 밑바탕되어야 한다. 나는 무지막지한 기억력으로 누구에게 어떤 구라를 쳐놨는지 죄다 기억하고 있다. 나는 치매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 거짓말이 상충되고 아이러니컬해지는 경우가 있기에 그 대상자들끼리는 죽어도 만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런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꾸밈없는 대화를 나누어 본지도 오래된 것 같다는 회의가 뒤따른다. 상대방에게 말을 할때 내 공갈이 들키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고, 불안해한다. 그리고 늘 상기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했던 거짓말 따위를..

거짓말은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나를 치장하고 꾸며내어 비루함을 감추고 싶어한다. 늘 자신없고 예민했던 내 인생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진실에 대한 불신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나를 속이는 행위일 수 도 있다. 내가 뱉었던 (진실로 포장된) 거짓을 나 스스로도 믿어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큰 불행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와 그러지 못하는 나 사이의 괴리를 말의 계단으로 쌓을 수 있다고 착각을 한 것 일까? 그러면 타인도 나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내가 그 멋지게 단장된 내가 되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운좋게 타인의 시선을 호도해놓고 그가 나를 좋게 본다면 나는 거기에 만족하고 자위해왔다. 그러나 내가 남에게 진실하지 못한 것은 타인 또한 진실하지 않을거란 의심을 낳게 되고 결국 진정한 관계를 방해한다. 뭐 인정하고 그리살면 될 것은 나는 거기에 죄책감을 느낀다.

남에게 잘보이기 위해 내가 꿀리지 않기위해 구라를 치는 것이 예민하고 소심한성격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변명같다.
강해지고 싶고 잘 나고 싶은데 될대로 안되네가 더욱 그럴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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