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이라나 뭐라나 1. 영화, 나부랭이

예전, 대학교 한 2학년때쯤 친구에게 '고백할께 하나있어' 라고 운을 띄우고는 '사실 나 일본영화 좋아해' 라며 수줍게 고백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우리(혈기 넘치던 20대 초반의 마초지향적 사고로 물 들어 있던)에게 일본 영화는 계집애들이나 좋아하는 물러터져버린 홍시 같은 영화의 준말에 다름 아니었다. 극강 꼴통 펑크밴드였던 '섹스피스톨즈'의 기타리스트가 비틀즈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퇴출 당했던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취향이 권력이 되고 다양성은 좆까라하던 그 시절에 내 고백은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당시 우리(같이 어울려 영화나 보며 소일하던)는 유혈낭자한 B무비와 키치로 무장한, 얼쩍없이 저렴한 영화만이 진정한 영화라며 혼을 불태우던 시절이었다. 일본영화를 좋아할려면 미이케다카시(변태), 구로사와 기요시(지적인 변태), 기타노 다케시(조폭형님) 정도. 나머지는 용납 불과. 특히 이와이 슌지는 우웩. 토나올 만큼 느끼한 빠다치즈에 식용유를 찍어먹는 정도로 생각되었다. 는 구라고 암튼 싫어했다. 웃긴건 그당시 난 이와이 슌지와 이누도잇신(메종드 히미코 감독이다)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녀석들도 좋아했을거라 생각된다. 도저히 싫어하긴 힘든 영화를 찍는 작자들이다. 집에서 질질짜고 나와선 아닌척 '영화 존나 구리더라' 했을거다. 센척해야 간지나니까. 그리고 그냥 싫었으니까.. 곱상한척 센치한척 스타일리쉬한척 진지한척 점잖빼는게, 근데 그게 아니더라. 그 '척'이 진짜라고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었다.

열등감을 센척으로 커버해야만 조금은 숨통이 트이던 시절을 지나, 나름의 객관성을 지니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이젠 일본영화에 대한 내 애정을 거리낌없이 밝히고 있다. 일본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인상은 (흥행위주로 일본영화가 배급되기 때문에) 굉장히 폭력적인 것과 굉장히 감성적인 것으로 스펙트럼이 한정 되어진다. 그러나 일본은 애니메이션의 나라이다. 그리고 라운지음악과 재즈의 강국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계가 없는 상상력과 다른 문화의 장점을 자신만의 고유문화로 탈바꿈하는데는 경이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장점이 영화에도 잘 옮겨져 있다. 전후 일본 영화를 전세계에 알린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얼마전 까지도 왕성하게 자신의 영화를 찍어댔던 이마무라 쇼헤이, 많은 B무비에 영감을 준 스즈키 세이준. 말해 입만 아픈 거장들이 일본영화의 뿌리가 되어주고 있다. 뭔가 세계영화사 레포트 쓰는 기분이 되살아나서 그만 줄인다.

어쨋든 이렇게 일본영화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은 오늘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이라는 영화를 봐버렸기에 그렇다. 현재 일본 영화계에서 왕성하게 활약하는 감독들 중 좋아하는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얼마전 배두나가 출연했던 공기인형의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역시 배두나가 출연했던 린다린다린다의 감독) 그리고 나카시마 테츠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를 보며 이젠 거의 그가 미쳤다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하이쿠로 대변되는 일본 특유의 여백, 그리고 그 행간 안의 섬광을 그 처럼 세밀하게 그려내는 이가 또 있을까 싶다. 오즈와 허우샤오시엔의 장점만 모아논 것 같다.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엇박자의 개그 센스와 인물간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를 막 엉클어 놓고 미적지근 하게 해결한 듯 만듯 찜찜한게 또 묘한 매력이다. 시나리오를 쓸때 이 야마시타 노부히로 스타일을 많이 흉내 내곤 하는데 중요한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ㅠ/ㅠ 아 슬프다. 그리고 이 나카시마 테츠야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인 히로카즈와 곧 그렇게 될거라 예상하는 노부히로와는 달리 나카시마 테츠야는 CF영화 감독 출신으로 영상만 화려한 그저그런 영화만 찍던 감독이었다. 그러나 내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불량공주 모모코'부터 거의 스타일을 만개했던 '혐오스런 마츠코'지나 '고백'은 또 다르게 읽힌다. 그의 장점은 지독히 무거운 신파적 서사를 무겁지 않게 그려낸다는 것인데, 감각적인 영상과 심하게 낙천적인 캐릭터 설정들이 그것을 배가 시킨다.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비극의 주인공들과 아이들의 옷처럼 총천연색으로 염색한 화면을 보고 있자면 독특하다 못해 괴이할 지경이다. 즐거운 비극? 반짝거리는 신파? 뭐라 표현해야 할까?

그런 그가 이번엔 굉장히 도덕적인 소재의 영화를 들고 나왔다. 동화 같았던 전작들과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감각적인 음악과 영상을 배재하면 영화 본연의 주제의식은 상당히 논쟁적인 소재이다. 자신의 딸을 잃은 여교사. 그리고 여교사의 딸을 죽인 학생A와B. 그리고 여교사는 그들의 담임. 딱 봐도 도덕, 윤리, 구원, 용서 같은 골치아픈 단어들이 떠오르는 이런 소재의 영화를 대책없이 발랄하게 영화를 찍는 나카시마 테츠야와 만난다니 가슴 설레지 않는가?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뭔가 '배틀로얄'스러운 포스터.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이와이 슌지가 찍은 배틀로얄 같았음.ㅋ 
                                                                    <분량 조절 실패. 2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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