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감독님 은퇴라뇨 - 평양성 영화, 나부랭이

요새 바쁜척 하느라 바빠서 오랜만에 영화를 한편보았다. 오랜 휴식으로 늘어져있을 내 눈에다 묵직함으로 무장한 영화를 나열해놓으면 금새 지쳐버리기에, 적당한 영화를 골라보았다. 해서 거창하게 은퇴하겠노라 밝힌 이 이야기꾼의 영화를 꺼내들었다. 예의 김기덕의 어조와는 다르게 읽히는 이 중년 감독의 귀여운 햇소리에 언론이 오바하며 떠든 감이 있지않겠나 싶다. 그러나 그가 정말 영화를 구겨 접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구겨진 자존심 반듯하게 펴내며 보란듯 재기하길 바란다.

짧은 글로 거만하게 휘갈긴 평론가들의 20자 평은 대체로 새겨듣진 않는다. 그러나 곧이 듣는 유일한 비평가인 이동진은 이 영화에 대해 안좋게 평을 해놓았다. '산발하는 에너지' 물론 평양성은 응집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애초부터 거기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관객들이 이미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극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관객의 눈을 잡기위해서 스토리를 날조하는 우를 범하기 보단, (타란티노는 이를 명쾌하게 뒤집으며 미친 영화를 찍어 냈었다. 그래서 천재감독이겠지만) 전쟁 스펙타클의 전시나 전쟁안의 휴머니티를 담는 쪽을 선택하곤 한다. 아니면 뚝심있게 전쟁의 허위를 담기위해 그 안의 광기와 잔악함을 날것으로 관객에게 체험하게 하기도 한다. 이준익의 선택은 당연히 전쟁의 휴머니티이다. 그러나 이준익은 뭔가 달라보인다. 탁월한 이 이야기꾼은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할거라 믿었던, 전쟁씬에서의 웃음 코드를 작위적이지 않게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 웃음 코드를 이끌어 내는 것은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힘이 크다. 그러나 캐릭터와 역사적 팩트 사이의 균형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흩어지는 에피소드를 서둘러 수습하며 결말로 치닫기에 이동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준익 영화의 장점은 애시당초 그런 것이 아니다. 응집력있고 매끄러운 이야기 진행은 이준익의 연출이 아니다. 그 것을 굳이 꼬집어내야 돈을 받는 평론가의 입에선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관객의 선택은 단점보다 큰 장점으로 좌우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말한 이준익의 휴머니즘은 투박하고 순진하지만 따뜻하다. 이 따뜻하다는 지극히 감상적인 단어가 그의 영화에는 잘 어울린다. 이준익 감독은 서면 인터뷰에서 코메디 영화로만 부각되는 사실이 안타깝고 오히려 정치적인 소재를 담아내는데 분투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자신의 영화를 편향해서 몰아가는게 안타까워 내뱉은 말이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그다지 이 영화에서 정치적인 색채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큰 축인 신라와 당나라 간의 암투, 그러니까 마지막 대승적인 결말에서 보여지는 적과 아군이 불분명해지는 아이러니 정도만이 그의 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국가간의 명분과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점철된 이 마지막 장면마저도 그의 순진한 휴머니즘으로 인해 좀 나이브해지는 구석이 있다. 즉 이 영화도 그가 말한 야심과는 달리 잘짜여진 휴머니즘 코메디 정도로 볼 수 밖에 없는 건 그가 가진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장점으로 부각되어지는게 옳다.

그 것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인물은 전작인 황산벌에서 살아남은 거시기이다. 그는 영화내내 도망만 다니는데, 소중한 사람을 위해선 희생도 감내하는 인물이다. 괜히 말해보자면 거시기는 무정부주의자가 가깝다. 사상을 의심받고 죽창에 찔려죽어 마땅할 그런 놈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논리를 거시기 같은 이에게 덮입혀서 뭐하겠나? 어차피 민초들은 살고 싶다는 본능만 있는 나약한 존재인데. 그들은 선택한적이 없고 선택되어지기만 했다. 그러니 대의나 명분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준익은 아에 대놓고 거시기의 입을 빌려 순진무구한 발언을 내뱉는데, 그 안에 담겨있는 정서의 파장은 크게 다가온다. 그가 백제의 군인이었다가, 신라의 군인이 되고 마침내 고구려의 군인이 되는 웃지못할 아이러니가 사실 이 영화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단초라고 할 수 있다. 리드미컬한 음악과 함께 마치 축제처럼 벌어지던 첫 전투를 지나, 피가 튀기는 살풍경을 뚫고 거시기가 눈물을 흘리며 읊조리는 대사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국가간 전쟁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실 뒤에 아무것도 모른체 이끌려 다니기만 한 작은 개인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평양성에도 인장처럼 박혀있다. 시선은 항상 작은 개인에 가닿기에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묘사를 풍부하게 하고 그 안에서 따뜻한 페이소스를 발산한다. 물론 유치하다. 지극히 감상적인 언사하나로 전쟁을 멈추고 한나라의 대장군이 감흥을 한다는 것은 누가봐도 비상식적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약탈하고 직접 칼을 들고 나가 싸운 사람보다 뒤에서 구경만한 이들이 호위호식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인가? 사실 공히 복잡해 보이는 사건의 내막은 단순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온갖 정치적인 야심이 뒤섞인 전투를 멈추게 한 거시기의 하잘것 없는 소망. 그리고 국가를 위해 투신한 고구려 장수의 마지막 유언이 다른 무게를 갖고 있다고 누가 쉬이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글이 길어졌다.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봐서 그런가 보다. 더 심각한 영화 봤으면 큰일날뻔 했다. 아무튼 이 영화는 평단에서도 관객에게도 큰 울림을 만들어내진 못한거 같다. 내 입장에선 유승룡과 윤제문의 투샷을 보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지만... 아무튼 이준익이 여기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흔히 말하는 웰메이드를 찍는 감독은 아니지만 그 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구수한 개그를 다시 못 본다고 하면 좀 아쉬울 것 같다. 투박한 그의 영화가 계속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가다 보면 언젠가 한번 대박칠 날이 올것 같아 더욱 그러하다. 그의 영화 스타일상 묵혀두고 발효하면 할 수록 더욱 진한 향기를 발할 것 같기 때문이다.
감독님 은퇴라뇨? 당치도 않으십니다요!!!!

<은테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이준익 감독님>



덧글

  • 유신 2011/03/18 10:53 # 답글

    암요. 7년 뒤에 매소성 찍어주셔야죠ㅜ
  • 개짖는소리 2011/03/18 14:23 #

    앞서 말했든 이준익 감독님이 그냥 애교섞인 농담한건데 언론에서 좀 부풀리지 않았나 싶네요..ㅋㅋ
    오래오래 영화 찍으셔야죠..
  • SARA☆ 2011/03/18 13:25 # 답글

    평양성이 흥행하지 못하면 "상업영화"은퇴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관객이 많이 들진 않았나봐요. 저도 영화관에서 봤는데.)
    상업영화 은퇴니까 단편영화나 예술영화는 계속 활동 하실듯.
  • 개짖는소리 2011/03/18 14:24 #

    개인적으론 감독님이 힘빼고 라디오스타같은 사람냄새 물씬나는 작은 영화로 다시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너무 작정하고 찍어서 실망도 컸을듯..ㅋ
  • Laftel 2011/03/19 02:25 # 답글

    나도 평양성 흥행 못하면 은퇴한다는 소리는 인터뷰에서 봤지만, 우스개 소리 아니었나;;;
    카고 니 이준익 감독 욕 내한테 많이 햇었는데...
  • 개짖는소리 2011/03/19 02:28 #

    나도 우스개소린데 다들 오바하는거라고 써놨자나..
    카고 내가 언제 이준익 감독 욕을 했노?
    가끔 내 생각을 첨언한 수준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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