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적어보자면 - 블랙스완 영화, 나부랭이



이런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냥 '졌습니다' 자신의 패배를 시인하면 된다.
감독 손에서 신명나게 놀아나고 난 뒤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요놈봐라 거기서 하며 실컨 따라와서는 목을 슬금슬금 비틀다 죽을라치면 살려주고 죽을라치면 살려주고,
아주 신났다.
예전 크로넨버그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델토로의 어두운 환타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것보단 심히 관능적이긴 하지만.
컨텍스트에 따라 여러 층위로 읽힐 수 있겠고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나에게 이 영화는 잔혹한 동화로 보여졌다.
섹스어필이라는 절대권력을 얻게 되는 소녀의 이야기.
관능을 배워나가는 소녀의 불안과 강박 공포 등등.

영화 내내 새어나오는 피로 환기된 초경의 이미지라던가,
성적 매력이 사라져버린 엄마는 딸래미를 마음껏 조련하다 뒷통수 맞는다던가, 
퇴물이 되었지만 과거 소녀의 아이돌이었던 발레리나를 동경하여 흉내낸다거나,
되바라진 계집 친구 잘 못 만나 성적 호기심에 불이 붙는다던가,
권위라는 권력에 휘둘리다 순진무구한 성적 매력으로 맞불 놓는 법을 배운다거나,
직접적인 신체 변화의 공포나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발작적으로 바라보는 거울의 이미지 라던가,
아동 심리학 책에서 봤을 법한 ('소녀가 여성(性)이 되어감에 있어 불안 심리' 라는 타이틀 같은걸로) 이야기가
영화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문제는 이 것을 위한 시각화와 차용할 소재인데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다.
이런 미친 연출력을 마주하고 나니 더 커진 자괴감이 온 몸을 짓누른다.

==

몇년간 아무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한 자신감 상실로 인해 나랑 비슷한 나이를 쳐먹고 살고 있는 이 땅의 창작자들은 무엇을 쏟아내고 있는지 확인 차 요 몇일간 단편영화만 죽도록 보았드랬다. 잠시 짬이 나 들렸던 모교의 영화제까지 치면 꽤나 방대한 양의 영화들을 보았던 것이 되겠다. 주로 인터넷 검색으로 이루어졌던 영화 관람은 지루하게 이어졌는데, 그만큼이나 영화의 수준도 지루한 것이었다. 떵떵거리며 휘갈겨놓은 영화제 수상목록들과는 별개로 (나의 오만함에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나) 왜 상을 받았는지 알 수 없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가 추천했던 엄청난 작품과, 범인들은 알아채질 못 할 천재성이 담긴 작품들을 난 왜 알아채지 못한 걸까?

1. 사람에겐 방어기제라는 녀석이 자신이 불리하다 싶으면 나타나 작동해주곤 하는데, 요놈은 조울증 같아서 한없는 자기비하로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때 홀연히 나타나 위안을 주고 떠나곤 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무력감을 느낄 때 자신의 틀려먹음을 세상으로 돌려버리고 나면 한결 몸이 가벼워지게 된다.

2. 좀 무식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과 술판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런데 왠일, 내 입장에선 좀 컴플렉스인 정치적 이슈나 사회문제에 대해서 논리적인 견해를 서술하는 녀석들이 달라보였다. 해박함을 자랑하려던 내 혀는 굳어버려 씰룩되기만 할뿐. 당황한 나는 녀석들에게 질문하나를 던졌다. '야!! 너희 그렇게 똑똑하면서 영화는 좆같냐?' 녀석들의 명쾌한 대답 '그게 그거랑 같냐?'

후자 쪽에 더 가깝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두가지가 적절히 배합된 형태다. 지리한 단편영화의 세례에 못이겨 뭔가 대승적인 결말을 위해 블랙스완을 선택했고, 어느정도 해갈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타인의 영화를 평가하는 것과 내가 실제로 찍는 것은 다른 문제다. 똑똑한 녀석들이 영화를 잘 찍는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결론 : 영화를 본다 -> 별거 아니네 -> 그렇다면 나는 -> 자기비하

물론 이건 좀 오바해서 쓴 것 같다. 나이 답지 않게 통찰력을 보이는 몇몇 작품에 깜짝 놀라며 보았고, 호기롭게 새로운 재능을 펼치는 후배녀석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알려진 이름 뒤에 얼척없이 못 찍은 영화들도 수두룩했다. 완성도를 따질때는 취향을 배제하려 신경쓰고 최대한 객관성을 가지기에 내 관람이 틀렸다곤 생각치 않는다. 못 찍은 녀석들도 분명 수두룩하다는 거다. 자존심 상하는 것은 그 함량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 뭘 해야 좋은 영화고, 어떤 걸 담아야 하며, 뭘 피해야 하는지 남의 영화는 밤새도록 떠들어 될 수 있으나, 내 영역안으로 들어오면 장님이 되어버린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