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글로 풀어보는 - 경계도시 영화, 나부랭이

영화건 뭐건 베끼는게 젤 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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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도시 1,2를 피곤한 몸에 목도하게 되었으나, 한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한 흡입력에 잠의 기운은 우주 저멀리. 다 보고 나서 뜨거운게 치밀어 올라 마구 뱉어내보려했는데 짧은 소견으로 덮어놓고 뱉다보면 거지꼴 못 면할거 같아 그만둔다. 이럴때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의 글을 찾아보는 것이 상책이다. 

글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 쓰는 모선배는 ('들뢰즈' 씩이나 빌려와) 송두율 박사를 고정된 영토를 해체하고 탈 영토화를 꿈꾸는 경계인으로써 그는 '기관 없는 신체'의 장본인이며, 그의 실체 없는 실존은 이데올로기의 분열과 대립에 어떤 균열을 일으킬수 있는 인물로 보고 있다.

어렵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그는 그가 상징화 하는 '경계인'으로써 남과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체 민족의 통일을 위해 애쓰는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하지 않음'의 전략을 폈던 송두율은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상을 의심받고, 위험인물로 간주된다.  경계인으로써 송두율을 지지하던 진보진영도 대를 위해 소를, 명분을 위해 양심을, 사회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고 그에게 종용한다.결국 이 훈수와 조언 덕분에(?)그는 전향선언을 하게 된다. 그의 33년 만의 한국행 부터, 그의 철학과 업적보다 북한에서의 행적 그러니까 그가 노동당 서열 23위 '김철수'냐 아니냐에 더 골몰하는 이 일렬의 코메디는 분명 이 땅에 실재하고 있는 일이다. 좌든 우든 자신의 조국임을 자각하고 통일을 염원하던 한 지식인은 거대한 사회의 횡포 앞에 나약한 개인일 뿐이다. 그의 양심과는 상관없이 송두율은 전향선언을 하게 되고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망명길에 오르는 것 뿐이다. 그 또한 역사의 잔존물이며 피해자이다. 불과 몇년 전, 실시간 헤드라인으로 다뤄지던 이 사건이 즉각적인 반성과 자기 비판 후에 너무 쉽게 망각되어 버렸다. 영화 티저 포스터의 문구처럼 2003년에는 그는 간첩이었으나, 2010년에는 간첩이 아니다. 그러나 언론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실유무가 아니라, 좀 더 자극적으로 소비될 대상의 유무이다. 단물이 빠진 대상은 쉽게 용도폐기되고 그 유통기한은 어처구니없이 짧다. 밝혀진 사실과 즉각적인 반성 뒤에 역사는 제자리로 돌아왔고 송두율 사건은 화석처럼 단단해진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씨네 21의 사설을 뒤져 보다 꽤나 유머러스한 글도 발견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식이다. 사람은 무릇 인지적 관점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된다. 대북정책에 주도권을 행사할 호재를 잡았다 생각한 모의원이 보온병을 포탄으로 본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고, '빈방 없음'이 '빈방있음'으로 보이는 대학가 하숙생들의 시야도 비슷한 맥락이겠다. 송두율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민주화 진영에서는 그를 레드컴플렉스를 청산할 상징으로 보았다. 그러나 언론에 몰매를 맞고 전세가 역전되어 오히려 그를 구출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결국 레드컴플렉스를 청산하기는 커녕 활성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송두율은 민주화 진영의 계산과는 달리 보수진영의 공고화를 도와주게 된다. 보고 싶은대로 봤던 민주화 진영에서는 그들의 예상과 달리 송두율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리자 믿고 받들겠다던 오버액션도 잠시 훈수와 조언을 지리하게 뱉어놓는다. 짐짓 이해하는 척 전향을 꼬드기는 좌익 민주인사들의 철야 비상회의는 이 다큐의 백미이다.

그러나 가장 가슴에 와닿는 것은 이동진 기자가 짧게 남긴 이 문장이다.
' 뭘 찍을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찍은 것이 뭔지에 대한 성찰'
앞서 두 글은 영화 내적인 내용, 담겨있는 정치적인 함의에 대해 풀어 낸 것이라면, 이동진 기자는 영화 외적인 메타적 관점에서 이 다큐를 보고 있다. 송두율의 33년만의 귀환에 초점을 맞추었던 연출자는 귀국 후 불어 닥친 이 땅의 광기에 영화의 방향을 재설정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몸에서 새어나오는 레드컴플렉스를 꾹꾹 밟아버려야한다. 어렸을 적 부터 받아온 교육과 이념의 세례에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균형을 가져야하는 연출자 조차 다큐 중반에 송두율에 대한 의심을 품게되었다는 소회를 풀어 놓는다. 이는 우리가 잘못되었다, 혹은 송두율이 잘못되었다, 로 단순히 말할 수 있는 계제가 아니다. 많은 것들을 명확히 말해야하는 혹은 그러도록 강요하는 사회의 관성이 우리 몸에 배어있다. 그것을 털어버리고 다시 카메라를 잡는데까지 연출자는 무수한 성찰과 의심의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섣부른 결론 보다 (영화 초반에 보이는 내려다본 서울전경처럼) 이 사건을 관망하도록 위치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도 생각하고 반추해볼 틈을 주고 있다. 어떤 결과로 체화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의심하고 성찰하는 순간이 누구든 필요하다. 이것은 무릇 연출자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다큐를 본 관객들도 영화의 공기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동진의 말을 약간 바꾸어 내가 본것이 무언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한 대목이다.

남의 영화를 보고 남의 글을 발판삼아 글을 쓰려니 많이 부끄러워 진다. 내 의견을 가지지 못함이 말이다. 송두율은 영화 속 인터뷰에서 비트켄슈타인의 예를 든다. 비트켄슈타인은 형이상학적인 것 혹은 불가지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완전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가타부타 이야기를 하다보면 논란만 생길 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햐 한다고. 송두율은 한국 우익신문이 자신에 대해 떠들어 대는 것에 반감을 표현하며 비트켄슈타인의 예를 드는데, 나는 내 무지를 숨기기 위해 비트켄슈타인의 예를 자주든다. 근데 이건 알지 못하고, 알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하는 거지 나 처럼 알 수 있는 데도 노력조차 없이 침묵해서는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공부다.





덧글

  • 2011/02/25 10: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개짖는소리 2011/02/25 18:57 #

    구하기 힘들어도 꾹 참고 찾아서 보시길..ㅋ
  • 알프 2011/05/10 12:36 # 삭제 답글

    어제 경계도시 1,2 편을 봤습니다.
    왠만한 영화보다 훨씬더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또한 카메라라는 시점을 통해 제가 들여다 보는 세계였지만
    날것의 그 무엇이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개짖는소리 2011/05/11 00:28 #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연출자의 시선을 배제하는게 쉽지만은 않죠.. 이렇게 균형잡힌 시각에서 사안의 내피까지 보여주는 수작을 보게되는 경우도 참 드물죠.. 연출자가 부럽습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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