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스트라이프를 입은 여자 음...악



LeeSa - 빨개요 (cover)




Chvrches - gun



신해철 음...악

 신해철에겐 질투심이 있었다. 오를 수 없는 거대함을 시기하는 건 쓸데없는 오지랖이긴 하다. 그러나 그건 사실 질투라기 보단 경외감이다. 잘난 무엇에 대한 두려움. 꺽기 위해 혹은 내 비루함을 감추기 위해 비하하고 격하한다. 저 새끼 또 저러네. 잘난 척 하네. 니가 뭘 안다고. 찌질한 추임새 같다. 얼마전 진중권의 '창비' 팟 캐스트에 신해철이 나왔었다. 신해철은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음악을 향유하고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그런 세상이 오면 뮤지션의 '기능'은 사라질 거라고. 너무 낭만적이라 허황된 유토피아를 부끄럽지 않게 말한다.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마디마디의 말엔 힘이 있다. 예전이라면 재수없다 얘기했을 지나친 겸손이 순진하게 가슴을 울린다. 그의 시선이 향한 '먼훗날 언젠가' 그리 될거라는 확고한 저자세가 밉지 않다. '새로운 음악의 세기를 위한 희생'이란 문장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것도 신해철이기에 가능하다. 그는 늘 가장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늘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3시간을 쏟아내고, 비워내고, 새로운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 로우파이 녹음을 하고 재즈 앨범을 내고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고, 늘 새로운 음악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던 그였다. 설렘에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허무하게.

몇 차례의 전화와 문자가 오고간 뒤. 예상 가능한 내 지인들은 공허감과 허전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소중했던 무언가가 쏙 하고 빠져나갔을 때 느끼는 감정들이 전해진다. 

시대의 아이콘이 남기는 자취는 '나'의 어떤 한 시대와 포개어지기 마련이다. 잃어 버렸지만 잊어버릴 수 없는 한 때. 내게 그의 음악이 상기하는 건 유치하고 병신 같았던 10대의 기억이다. 지금도 신해철의 음악을 들으면 당장이라도 그 때로 돌아갈 것만 같다. 내게 처음으로 취향이란 게 생겼을 때, 그 쾌감과 흥분을 알려준 건 넥스트란 밴드였다. 좋아하는 걸 마음껏 좋아하는 건 결국 나에 대해 알아나감에 다름 아니다. 이른바 중2병. 그러니까 질풍이 높게 파도 치며 거칠게 자아를 형성하는 고만고만한 시절. 영도의 존재가 되어주던 내 영웅 중 하나로써 신해철. 반항심이 목까지 치밀던 뻔하디 뻔한 10대의 감수성에 넥스트의 음악은 거칠지만 매혹적이었다. 표현하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꿈이 너무 커 감당하지 못할 때, 괜히 미안하고 죄스러울 때, 괜찮다고 폼잡으며 위로하던 넥스트의 음악을 참 많이 들었었다. 병신같고 한심해 보여도 사춘기 속 소년의 성장은 진지하다. 그 찌질했던 때의 추억을 한 움큼 쥐어 탈탈 털어보면, 먼지처럼 나폴나폴 신해철의 음악들이 피어오른다. 

그러니까 우린 그 빛나던 때를 잃어버려 후회하듯이, 미련이 남듯이, 신해철의 죽음을 받아 들인다.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며 눈물 글썽이던 조문객의 낯빛에서 그런게 읽혔다. 청춘이 끝났구나. 이제 진짜 어른이구나. 뭐 늘 그렇듯, 문제적 락 아이콘의 이름은 청춘이라는 단어 위에 포개어지기 마련이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신해철의 이미지는 독설로 상징되는 직선의 날카로운 것들로 이뤄져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음악 씬 뿐만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해, 더 나아가 정치적인 소신까지도 가감없이 뱉어낸다. 안티히어로를 자처한다. 대중음악이 예술은 아닐지라도, 예술이 반드시 정치적일 필요는 없더라도, 무언가 만들어 내는 사람이 사회를 향해 침묵하면 안된다는 게 신해철의 생각이었다. 그에 대한 많은 일화와 말들이 머릿 속에 떠오른다. 늘 투쟁적이었던 모습으로. 인디씬을 살리기 위해 후배들을 독려했고, 루저와 소수자를 위해 총대를 멨으며, 사회 이슈에 늘 솔직하고 날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에 대한 안티와 부정적 이미지는 그렇게 쌓여만 갔다. 그러나 신해철은 숨거나 피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신해철을 싫어한 적도 있었고, 오해한 적도 있었다. 신해철은 한결 같았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오해와 미움도 잠시 어느 순간 신해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정의롭고 바른 말, 소위 꼰대의 언어, 그러나 그건 누구의 입을 통해 세상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그리고 그 무게감을 견디고 감내할 수 있을 때 그 말은 자신의 것이 된다. 신해철은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그 무게로 쳐진 어깨가 지끈거려도, 내색 조차 않고 다음 말을 찾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을 듣는 게 좋았다. 시원하고 상쾌했다. 그리고 묘하게 따스했다. 그 말에 참 많은 위로를 얻었다. 
 
수능 전날 뜬 눈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잠이 잠을 쫓아내며 초조함에 몸을 뒤척였다. 자지 못하면 망한다. 어린 내게 너무 큰 두려움이었다. 열심히 준비해온 모든 게 단 한번의 시험으로 결정난다는 건 냉혹하고 처절했다. 시험을 망쳐 내 인생도 망쳐버릴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마왕의 라디오를 켰다. '수능은 니들이 치는 거고 우리는 놀거다' 라며 신나는 댄스 음악을 틀어 제끼던 마왕이 야속했다.  그때, 늘 그렇듯. 한마디 툭. '야 니들 살다보면 수능 따윈 인생에서 중요한 일 베스트 100에도 못 들어, 궁상들 그만 떨어 새꺄' 새꺄란 말은 하지 않았겠지만 내 귀엔 분명히 그렇게 들렸다. 신해철의 위로는 늘 그런 식이다. 별 일을 별 거 아닌 것 처럼. 쿨한 척 폼잡지만 마음이 약해 흰소리로 진심을 넌지시 던지는. 그의 화법은 그래서 좋았다. 그래서 신해철의 음악이 좋았다. 덕분에 신나는 락음악을 들으며 조금. 잠을 잘 수 있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이 오만함으로 왜곡되어도, 그의 센 말이 재수없음으로 치부되어도.난 신해철이 마음 약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툴툴, 거친 포장 안엔 사람과 세상을 향한 애정이 조심히 숨겨져 있다. 난 신해철이 다정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신해철은 무서운 아버지처럼 엄격하고, 가끔 세속에 밝아 현실적이어도, 결국은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 며 순진한 이상을 노래하던 사람이었다. 수많은 청춘인 '나'를 위로 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음악에 열광하던 뜨거웠던 계절이 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좀 서럽다. 


신해철이 남긴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당연히 넥스트 4집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곡은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이다. 언제건 바다를 찾아 바람이 얼굴을 간질이면 괜히 센치한 마음에 곡의 첫 소절인 '바다 검푸른 물결 너머로 새는 날개를 펴고' 를 중얼 거린다. 일종의 병이거나, 습관 같은건데. 바다만 가면 무슨 종교 의례처럼 노래를 부른다. 궁상이겠거니. 암튼 이 곡은 넥스트의 프로그레시브한 스타일을 가장 선연하게 보여주는 대곡이다. 청년 신해철이 넥스트를 만들고 난 후 두번째 앨범이지만,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이라는 걸출한 연주자들과 진용을 짜고 내놓은, 넥스트의 사실상 첫번째 앨범이다. 1집에도 참 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락커 신해철의 시작을 알리고 그의 실험적인 음악인생이 시작된 건 넥스트 2집이라 생각한다. 

이 곡엔 내가 신해철, 정확히 말해 넥스트를 좋아했던 이유가 모두 집약되어 있다. 잔잔한 파도 처럼 시작하는 '디 오션'은 격랑처럼 높게 치솟다가 뭐라뭐라 해괴하게 읊조리는 신해철의 목소리로 끝이 난다. 파도처럼 변화무쌍하고 드라마틱한 전개고, 바다처럼 깊고 웅장한 사운드다. 이 곡은 넥스트 2집 이후 신해철이 해쳐나갈 수많은 실험적인 음악들의 모태로 들린다. 내가 이곡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가사다. 불멸, 고독, 공허 같은 관념어들이 주를 이루는데, 대중음악의 문법상 이런 류의 가사가 세련되게 통용될 리 없다. 오히려 젠체하고 허세부린다고 까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마왕'이라는 별칭 답게 한톤 낮은 저음의 목소리와 넥스트의 웅장한 사운드가 이 가사들과 만나면 오히려 고풍스럽게 들린다. 격이 있어 보인다. 진짜 '죽이는 락' 이 되는 거다. 이러니 사춘기 소년들이 열광할 수 밖에. 허세가 아니라 진짜 '있어' 보이니까. 지금 들어도 쩐다. 이런 명곡을 신해철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만들어 내었다. 오글거리는 가사를, 아니 개간지나는 가사를 듣다보면 한창 꿈꾸고 고독해 했을 어린 '신해철'이 떠오른다. 내가 떠오른다. 아직 꿈을 꿔도 괜찮은거지? 마왕?

우리가 언제부터 꿈과 낭만을 이야기 할 때 쪽팔려해야 했나. 그걸 쪽팔린다고 생각하는 게 쪽팔리는 거다. 
꼰대가 된거라고. 그게. 새꺄. 

마왕. 잘 가세요.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한마디 쏘아붙이지도 못하면서 - 10분 영화, 나부랭이

 진지하면 욕 먹기 십상이다. 진지함의 동의어는 더이상 사려깊음, 침착함, 신중함 따위가 아니다. 진지함은 고루함, 따분함, 존나 꼰대, 를 표상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가벼운 용례로, '새퀴~~ 존나 진지빠네!!' 정도가 있겠다. 물론 진지함 혹은 엄숙함에 가벼움으로 대항하는 것은 오래전 부터 있어 왔던 피지배층의 전략이었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이 거대한 것, 대항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것을 자신의 눈높이로 낮추고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거대한 대상을 희화하고 가볍게 만들어 무력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이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도피라 부를 수 있지만 가볍게 처리된 무거운 대상의 부조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결국 도피지만 공격이다. 그러나 가벼움을 지향하고 심각한 것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현 정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대상을 풍자하고 조롱하려는 공격적 의지보단 대상을 외면하려는 회피적 성격이 강하다. 가벼워져 무거운 것에 애써 눈을 돌리려 한다. 

방송 pd를 꿈꾸는 비정규직 회사원 호찬은 매사에 진지하다. 열심히 묵묵히 하면 정규직이 될 거란 생각을 한다. 또한 방송사 pd의 꿈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간신히 찾아온 정규직 기회를 낙하산 타고 온 여직원에게 빼앗기고, pd의 꿈도 만만찮다. 호찬은 이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웃는 법이 없다. 그런 호찬에게 직장 동료들은 'Why so serious?' 란다. 사내에서 벌어지는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해 한껏 심각한 호찬에게 직장 동료들이 건내는 말이다. 동료들 눈엔 진지한 호찬은 비호감이다. 그의 진지함이 자신의 비열과 무능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가벼운 웃음과 농담 뒤에 애써 숨기려 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호찬의 심각함 앞에서 들어나는게 부담스럽다. 그러나 직장 동료들에겐 강력한 믿음이 있다. '그래봐야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똑같다' 라는 믿음. 이 믿음은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진지빠는 호찬을 병신으로 만드는 강력한 주문이다. 

김혜리 기자님의 글을 보고 영화를 반추해보니 아.. 참.. 내 이야기다 했던 장면이 있다. 
평론을 읽는 장점은 놓쳤던 장면에 새로운 의미의 숨결을 불어넣게 해주는 것 일테다. 

호찬에겐 동생이 하나 있다. 그는 미술 입시생이다. 그러나 백수인 아버지 휘화 가난한 환경 탓에 예술가의 꿈은 녹록치않다. 하여 동생은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할꺼란 말을 서슴치 않게 한다. 맹랑하고 조숙한데 어딘지 체념적인 슬픈 아이다. 정규직이라고 구라친 아들 빽 믿고 여기저기 돈을 끌어온 어리숙한 아버지의 행동에 '이렇게 된 건 다 아버지 탓이다!!' 란 막내의 필살기를 날리는 동생. 당연히 가출은 덤이다. 가출을 끝내고 돌아온 동생의 뒤통수에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호찬. 그러나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면 할 말이 없거나. 아니면 말을 할 자격이 되지 않거나.

말을 하는 이의 매무새가 (그것이 조언이라는 옷을 입은 형태가 되었을 때) 남루하다면 말의 옷태가 제대로 날 수 있을까? 농담처럼 위장한 조언을 즐겨하던 때가 있었으나 요샌 말을 아낀다. 말에 힘을 싣는 건 권위와 위치다. 상대를 개도하기 위해 던지는 말의 경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 이젠 입 속에서 웅엉거리던 말들이 상대에게 가기전 '내가 뭔데... 내가 뭐라고...' 에 막혀 갈 곳을 잃고만다. 상대에게 주는 공격적인 말은 다시 되돌아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호찬도 동생에게 뭔가 멋진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형이라는 권위에 기대 동생의 위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처지는 말할 '자격없음'을 끝끝내 상기시킨다. '내가 뭔데... 내가 뭐라고...' 이제 말을 아끼기로 한다.  그러나 한 마디 쏘아붙이지도 못하면서 눈에 보이는 건 많고 하고 싶은 말은 참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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